제공: 박관순

<SF 문인마을>

연기 안 나는 굴뚝

박 관 순

옹기종기 산기슭에 엎드려 사는 가난한 시골 초가마을이 하나 있었다. 맨 위집에 사는 할멈이 무엇이 그리 언짢은지 이리저리 마당을 서성이며 혼잣말처럼 중얼중얼 염불 외듯 푸념을 한다.

“이 할망구 오늘은 또 무엇이 그리 못마땅해 저리 청승인가“ 아까부터 할멈 눈치만 살펴보고 있던 영감도 따라 중얼거린다. 할멈은 영감에게 마음을 들킨 듯 부엌으로 들어가 버린다. 영감은 부엌까지 따라 들어가 한마디 더 한다.

“임자 어디 몸이라도 아픈 거야!“ ”몸이 아프긴 어디가 아파요, 이렇게 멀쩡한데!‘ “그럼 마음이 아픈 게로구먼--” 영감의 말에 할멈은 참았던 울음이 섞일 듯 눈시울이 젖는다. 영감은 할멈이 왜 그리 안절부절 하는지를 벌써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건너 마을 가난하게 사는 딸이 안쓰러워 늘 저렇게 가슴 알이 하는 것임을--..

“글쎄 해가 다 저녁인데 그 아이네 집만 아직도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지 않고 있잖아요? 필시 그 아이들 오늘 저녁도 굶을 모양 이예요” “허허, 좀 늦을 수도 있는 게지 그렇게 조바심한다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사위가 부지런하니 아마 어디 가서 멧나물, 멧감자라도 몇 알 캐다가 끼니를 때울 거여” 영감의 가슴도 메여 온다.

할멈은 눈물 섞인 한숨에 땅이 꺼진다. “주변머리라곤 하나도 없는 것들--, 두 양주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행여나 하고 조바심하며 노을빛 그림자에 어둠이 깃들어가는 건너 마을 딸네 집 굴뚝을 바라보며 요 때나 저때나 연기 피어오르길 기다리느라 눈을 떼지 못한다. “할멈 방금 연기가 피어올랐어, 그 애들 굴뚝에 연기가 피어올랐다고!” 할멈도 고개를 들어 건너 마을을 바라본다. 그 아이들 집이 맞아요, 그래, 내 뭐랬어, 두 양주의 얼굴이 그제 서야 조금 펴진다.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가난한 삶을 살아 왔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그들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그런 가난을 겪었었다. 동족상잔으로 피투성이가 된 폐허 속에도 가난은 극심했다. 오죽하면 민주질서를 어기고 군사정변을 일으킨 5.16 혁명군이 “기아(飢餓)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라는 형명공약을 내세워 떳떳치 못한 혁명의 명분으로 삼기까지 했었을까.

그렇게 굴뚝은 하루 세 번 연기가 피어나야만 한다. 아궁이에 불을 집혀 밥을 짓고 그 불길이 구들장 밑 방고래를 거쳐 굴뚝으로 빠져나가야만 우리 가녀린 생명줄은 이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산골자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 옹기종기 웬 연기 대낮에 솟나 /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 애들이 /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 옛이야기 한 커리에 감자하나씩 /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 살랑살랑 솟아나는 감자 굽는 내”

윤동주 시인의 ‘굴뚝’ 시다. 구절구절 정감이 솟는다. 산골짜기 옹기종기 감자 굽는 내 피어나는 작은 오막살이 낮은 굴뚝이 얼마나 정겨운가, 불과30년 전 연탄 땔 때만 해도 집집마다 굴뚝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라졌다. 덩달아 아궁이도 부뚜막도 사라졌다. 아궁이가 없으니 부지깽이란 말도 부지깽이도 그 실체가 어디론가 가버렸다. 덩달아 없어지게 될 것은 아직도 많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점잔은 강아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 “가을 추수 때는 부지깽이도 뛰어 다닌다” 모두 아궁이와 굴뚝에 얽힌 속담들이다. 그리고 서민들의 삶속에서 울어난 삶의 철학이다. 아주 오랜 세월 우리의 삶과 같이 해온 하나의 생활문학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 속담들이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굴뚝, 아궁이, 부뚜막이 없어졌으니 그 실체를 보지 못한 새 세대들이 어떻게 그 속담을 이해하고 언어생활 속에서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에는 2만 여구(句)의 속담이 있어 중국, 영국, 스페인과 함께 속담이 많은 나라의 하나에 속한다고 한다. 그렇게 수 천 년 이어온 우리 삶속의 풍속도와 같던 속담들이 이제는 의식할 겨를도 없이 하나 둘씩 어디론가 그렇게 사라저가고 있다.